고객여러분께 최상의 제품을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황혼
아버지가 정년퇴임 하신지 벌써 2년째 되어갑니다.
그 동안 산에도 다니시고 친구분들도 만나시고 나름 본인만의 시간들을 가지시는 듯, 싶더니 최근 몇 개월간은 말수도 줄어들고 특별한 일 없이 TV만 보시는 경우도 많아지셨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주말에 시간을 내서 등산을 가시자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맑은 공기를 쐬시면 머리도 한결 가벼워지지 않으실까 해서 어머니도 모시고 세 식구가 집 근처 등산로를 향했지만, 오랜만의 등산이 힘에 부치셨는지 아버지는 중턱에서 돌아 내려가신답니다. 등산로 입구 식당에서 막걸리 한잔 하고 있을 테니 어머니 모시고 올라갔다 내려오라고 하시네요. 걱정도 되었지만 어머니 역시 간만의 외출이신데 그냥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중간 봉우리 정상을 찍고 내려왔는데 뜻밖의 광경에 당황했습니다.
등산로 입구에 세워져 있는 엄청 크고 무거운 오토바이를 이리저리 신중하게 들여다보고 계셨고, 옆에 주인인 듯 보이는 한 어르신은 무언가를 계속 설명 중이셨네요. 앉아보라는 주인의 권유에 아버지는 조심스러운 듯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오토바이 안장 위에 앉으셔서 손을 뻗어 핸들을 잡아보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절 보시더니 아들이냐며, “아들이랑 같이 하나씩 타시면 되겠네~?!” 하시는 겁니다. 이게다 뭔 소린지….
곧 이어지는 어머니 잔소리…
“또~또~!!! 그런 거 타다 단번에 하늘 구경하시게~? 위험하게 왜 자꾸 그런걸 봐요~?”
잔뜩 못마땅해 보이셨습니다. 믿기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얼마 전부터 오토바이에 눈독을 들인다는 겁니다. 평소 근엄하고, 말수 적은 무덤덤한 아버지 모습과 너무도 대비되는 상황에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 어머니와 삼촌에게 들으니 아버진 나름 그 시대 멋쟁이셨답니다. 탈것에 관심이 많으셨지만 가정 형편상 소유할 수는 없었고 어디선가 기사를 한 두 개 정도 스크랩해서 방에 붙여두시기도 하셨다네요.
그날부터 아버지 나이에 타실 수 있을만한 오토바이를 찾아 다녔습니다. 퇴계로라는 곳에 가서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물어도 보고, 인터넷도 검색해봤습니다. 그렇게 찾아서 내린 결론이 미라쥬125입니다. 아버지께 운동을 권해드렸습니다. 바이크 타시려면 힘이 필요하지 않으시겠느냐고…. 내년 봄에 한대를 사드리는 것으로 약속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반대 하시지만, 아버지와 아들로, 남자 대 남자로 약속을 했습니다. 황혼의 나이에 청년시절의 꿈을 이루고 새 인생을 산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행복한 상상입니다. 그 상상 조금만 거들어 드려서 아버지가 다시 활력을 찾으실 수 있다면 그게 더 멋진 효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안전사고가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날 이후 확연하게 달라지신 아버지 모습이 반가울 뿐입니다. 일상에 활력도 찾으셨고, 꼬박꼬박 아침 운동을 다니십니다. 내년 봄 S&T모터스와의 인연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밑도끝도 없지만 저희 아버지 잘 부탁 드립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