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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wners Story 4기 당선작 [최규철]

  • 작성일. 2013-09-24
  • 조회. 12,616

나중을 기약하며..

 

내 첫 애마는 4년 전 고2때 만난 RX125였다. 공부는 진절머리 났고, 반항심만 자꾸 생기던 때였으니 오토바이는 최고의 일탈 도구요, 장난감이었다. 2학년 생일이 지나자마자 잽싸게 등록한 게 원동기 면허였다. 선배 형이나 친구들이 알바하면서 타고 다니던 배달 오토바이로 미리 연습을 했더니 어렵지 않게 붙었다.

 

합격 하자마자 동네 센터로 달려갔다.

벌써 몇 번 오가며 찜해 둔 곳이다. 그 센터엔 항상 으리으리한 수입 오토바이가 몇 대씩 서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갖고 싶어서 설렜지만 현실은 매정하게도 총알 없는 학생신분이었다. 된장….

 

(CBR125)이 싼거 없어요?” 당시에 내 형편에서 젤 인기 많은 모델로 일단 던져봤다.

누가타게?” / “저요” / “중고 살려구?” / “” / “그러지 말고 돈 좀 모아서 새 거 하나 사~. 어설픈 중고 샀다가 수리비만 더 들어. 형이 하는 말 들어라~ 그럼 나중에 후회 안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장님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그 센터 단골손님이 자신의 1000cc 오토바이를 정비하며 대답해준 거였다. 상황을 모르는 난 궁금한걸 이것저것 물었고, 왠지 그 형님 말이 다 맞는 것 같았다. 결국 그날 사장님까지 오셔서 장시간 상담 끝에 S&T모터스의 RX125를 사기로 맘을 먹고 방학 동안 모은 알바비와 그간 모아둔 용돈까지 탈탈 털어 계약금을 걸고 왔다. 사실 실현 가능한 가격대의 모델이 많지도 않았지만, RX의 사진을 처음 보자마자 디자인이 맘에 쏙 들어서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나 싶었지만, 첫 애마를 새차로 산다니 가슴이 막 뛰었다. 일주일간의 설득으로 겨우 부모님(정확히는 어머니, 나중에 아부지한테 들켜서 하루 반나절을 혼났음)의 도움(결국은 할부로 다 갚음)을 받아 잔금을 치르고 녀석과 처음으로 대면했다. 화물차에서 내리는 RX의 모습이 너무 위풍당당 듬직해서 신이나 있으니 그 형님이 또 조언을 한다.

 

들떠서 흥분하다 사고 난다~ 첫 주행, 첫 사고가 중요한 거야~ 도로주행 안 해봤지? 타는 법이랑 간단한 경정비는 가르쳐 줄 테니까 앞으로 하나씩 배워~!”

 

생각해보면 참 다행스러운 인연이었다. 그 형님이 아니었으면 혼자서 어딘가에 굴러다니는 중고하나 집어다가 생고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리버리한 날 속여 돈을 벌려는 사기꾼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형님 덕분에 처음부터 차근차근 타는 법, 꼭 주의 해야 할 안전사고나 내차 상태를 스스로 진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요령까지 배웠다.

 

그렇게 배워가며 함께 달린 RX는 내게 더없이 잘 맞는 발이 되어 주었고, 내 또래 학생들이 흔히 타는 CBR보다 높은 차고는 오히려 어디를 가도 주목 받는 기분을 느끼며 신나게 바람을 가를 수 있었다. 푹신한 쇼바와 넓은 핸들은 경쾌하고 가벼운 주행 감을 보여주었다. 투어도 많이 따라 다녔다. 주말이면 양평까지 형님과 그 친구분들 따라 열심히 달렸다. 125cc 1000cc를 따라가는 건 무리였지만, 일행 중엔 250cc 스쿠터를 타는 사람도 있었으니까길 안 잊어 버리고 정말 열심히 따라 다녔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맘이 들뜬다.

 

안타깝게도 꿈만 같던 RX와의 인연은 5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쌀쌀한 가을바람 부는 밤에 남산을 오르다가 넘어져 사고가 났다. 다행이 몸은 찰과상 정도로 가벼웠지만, 내 첫 애마는 회생하지 못하고 결국 폐기처분 되고 말았다. 다들 몸이 그만하길 천만 다행이라고 했지만, 난 오히려 RX에게 미안했다. 형님의 조언이 생각나서 컨트롤을 벗어난 RX를 내동댕이 치고 뛰어 내렸던 것이다. 내가 무리를 해서 난 사고였고, 결국 내가 RX를 그렇게 만들었다.(회상하니 눈물이…)

 

예상대로 부모님은 결사반대를 외치시며 만류하셨고 부모님 몰래 친구들 스쿠터도 빌려 타봤지만 RX만큼의 만족을 느끼지는 못했다. 아쉽지만 지금은 잠시 휴식기를 갖는 중이다. 그래도 여전히 난 RX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내 애마를 타고 달린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를 제대로 알아버렸다. 한번 맛을 알았으니 포기할 순 없다.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천천히 준비해서 더 좋은 애마를 입양할 생각이다. 다행인건 RX를 만나도록 도와주었던 좋은 인연들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 인생 선배로써의 조언도 잊지 않으시는 형님과 약속했다.

 

나중에 꼭 근사하고 멋진, 제대로 된 라이더가 되겠습니다. 꼭 다시 그때처럼 가볍고 경쾌하게 달리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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